설교말씀

2020-11-8 "바울의 사도권과 복음"-(갈1:1~5)
2021-03-07 21:48:12 지음교회 조회 672

201108-주일 낮 예배(갈라디아서 강해 1)

 

바울의 사도권과 복음

◈ 갈 1:1~5 ◈

 

오늘부터 갈라디아서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갈라디아서는 바울이 1차 전도여행 때에 복음을 전한 갈라디아 지역의 교회들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학자들마다 갈라디아라는 지역에 대하여 이견이 있습니다. 우선 골이라는 민족을 따라 갈라디아라고 불리는 곳이 있는데, 오늘날의 터키 북부 지역입니다. 반면에 우리는 갈라디아 지역을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 등 로마의 행정구역상의 갈라디아 지역이라고 봅니다. 이곳은 바울이 1차 전도 여행 시 복음을 전한 곳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곳에 바울은 왜 갈라디아서를 보내었을까요?

오늘 본문은 바울의 서신인 갈라디아서의 서문에 해당합니다. 이 서문은 누가 누구에게 편지를 쓰는지와 인사말이 담겨있습니다. 이것을 통해 갈라디아서의 개론적인 부분을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1. 바울의 사도권

우선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자신이 누구인지 밝힙니다. 그런데 자신을 소개하는 내용이 심상치 않습니다. 우선 한글 성경은 “사도된 바울”이라는 말이 제일 뒤에 나옵니다. 하지만 원어에는 “사도된 바울”이라고 먼저 자신을 소개합니다. 여기서 “사도”라는 직분은 초대교회 당시에만 있던 특수한 직분입니다. 오늘날에는 없습니다. 이 뜻은 “보냄을 받은 자”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다”라고 밝힙니다. ‘사람들에게서 난 것’과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은 같은 표현입니다. 그런데 같은 표현을 이렇게 중복으로 사용하는 것은 결코 자신의 사도됨이 사람에 의한 것이 아님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럼 자신이 사도가 된 것은 사람이 임명해서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은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있어서 중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갈라디아 지역에 복음을 전하였고, 그 결과 교회가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이 개척한 교회에 자신을 소개하면서 “사도된 바울”이라고 밝히는 것은 왠지 어색합니다. 그냥 ‘갈라디아 성도들 안녕 잘 지내지? 나 바울이야’라고 해도 모를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굳이 자신이 사도라는 것과 이 사도직이 사람에 의해 세워지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자신의 사도권에 대하여 의심하는 갈라디아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이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가 되었다고 강조합니다. 본래 사도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예수님의 직계 제자들을 일컫는 말로 사용됩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사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직접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고, 또한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복음 전할 사명을 받았습니다(행9:6,15). 그러니 자신은 예수 그리스도가 직접 만나주시고, 사명을 주시고 보내신 사도입니다. 만약 그가 하나님이 보내신 사도가 아니라면 그가 전한 복음은 모두 가짜가 되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바울이 자신을 자랑하기 위해 자신의 사도권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전한 복음이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에 따라 전한 복음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선교사 바울’도 아니고, ‘전도자 바울’도 아니며, 오직 ‘사도된 바울’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사도직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라고 해도 되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라고 강조합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강조할까요? 자신이 사도가 된 것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자신은 비록 예수 그리스도의 직계제자도 아니고, 살아계실 때에 직접 만난 적도 없지만,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고, 그에게서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전하고자 하는 복음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인 것입니다. 자신의 사도권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곧 하나님 아버지께서 다시 살려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이라고 하지 않고,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라고 할까요? 그것은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나타나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주의 백성이 되신 지음가족 여러분! 우리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우리가 원해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또한 우리가 받은 직분은 사람에 의해 세워진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에 의해 세워진 것임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비록 사도는 아니지만 교회를 섬길 귀한 직분을 주셨으니 이 직분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수신자 갈라디아 교회

바울은 갈라디아의 여러 교회에 이 편지를 보냅니다. 갈라디아 지역은 지금의 터키 남부 지역에 해당합니다. 이 지역의 여러 교회들이 이 서신을 둘러보도록 한 것입니다. 바울은 이들 지역에 1차 전도여행 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대주의자들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방인 성도들을 유대주의화시키려고 하면서 바울의 가르침을 거부하도록 가르쳤던 것입니다. 갈라디아 교회들은 바울의 가르침보다 유대주의자들의 가르침을 따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할례를 받아야 하고, 율법을 그대로 지켜야 한다는 주장을 쉽게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들은 자유의 복음을 받고도 율법의 종으로 변질되는 거짓 가르침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공의회가 열려서 방문했던 것을 갈라디아서 2장 1절에서 밝히고 있습니다(참고, 행15장).

그래서인지 바울은 수신자인 갈라디아 교회에 대하여 조금은 차갑게 인사말을 시작합니다. 일반적인 바울 서신에는 수신자들을 단순히 “OOO교회”라고 하지 않습니다. 로마서에는 로마교회라고 하지 않고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라고 했으며, 문제가 많던 고린도 교회에도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라고 말하며, 에베소 교회에는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에게”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각 교회마다 수신자들을 향한 그리스도인이라는 수식과 함께 칭찬의 내용을 포함했습니다. 하지만 갈라디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는 그리스도인 또는 성도라는 표현도 없을 뿐 아니라 칭찬도 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바울의 가슴 아픔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 서신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수신자들을 향한 축복인데, 갈라디아서에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비록 갈라디아 교회가 바울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답답하게 하였을지라도 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기원합니다. 은혜는 우리가 받을 공로나 자격이 있어서 받는 대가나 상이 아니라 하나님이 값없이 주시는 호의입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님의 은혜 놀라워”라는 찬송처럼 우리는 아무런 자격이 없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살려주시는 은혜를 입었으니 얼마나 큰 복입니까? 또한 평강은 샬롬 곧 평화를 의미합니다. 이 평강은 하나님의 원수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평화를 이룬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자는 은혜와 평강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단순히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라고 하지 않고,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라고 하므로 은혜와 평강의 기원을 밝히고, 간구합니다.

성도로 부르심을 받고, 매주일 하나님을 말씀을 받는 지음가족 여러분! 복음을 듣고, 은혜에 잠깁니까? 그런데 그 은혜를 낚아채려는 유혹이나 상황은 없습니까? 여러분의 마음 밭이 좋은 밭이 되어서 복음의 씨를 빼앗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도로서 믿음을 지켰다는 칭찬을 듣기를 원합니다. 비록 그런 삶이 되지 못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넘치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3. 복음의 핵심, 그리스도

바울은 은혜와 평강이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온다는 것을 밝히고 난 후에 간단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하신 일에 대하여 알려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먼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됩니다. 다시 말해서 할례를 행하고, 율법을 지켜야만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데, 그 믿음의 근원이 되신 주님은 바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를 따르는 우리들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이유는 바로 우리를 이 악한 세대에서 건지시기 위함입니다. 이 악한 세대라는 말은 지금 우리 앞에 놓여있는 악한 세대라는 의미로서, 우리의 구원이 미래의 일이 아니라 지금 일어나는 일임을 알게 합니다. 즉 주님이 지금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악한 세력으로부터 우리를 건져주시기 위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심을 보여줍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이 악한 세대에서 결코 구원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이는 갈라디아 지역에서 활동하는 유대주의 교사들의 가르침을 전면적으로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주장이 거짓이라는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악한 세대에서 건지시기 위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셨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악한 세대에서 건지시기 위해 주님은 자기 몸을 아낌없이 우리를 위해 내어주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자기 몸을 주시고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주님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신 최고의 순종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라고 언급합니다(빌2:6~8). 그리고 바울은 “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라고 인사말을 마치는데,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주님이 하나님의 뜻대로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들도 다른 복음에 속지 말고, 바른 믿음에 굳게 서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종하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려야 합니다.

복음의 은혜를 입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지음가족 여러분! 주님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죽기까지 복종하시며, 우리를 악한 세대에서 구원해주심을 믿으십니까? 주님의 대속이 아니면 우리는 결단코 악한 세대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주님이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대신 죽으심으로 구원을 얻었음을 기억하고 항상 감사합시다. 그리고 우리도 주를 따라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살아갑시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바울이 다른 복음을 받아들이고 믿음에서 떠나가는 갈라디아 교회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쓴 갈라디아서를 통해 우리의 신앙을 바르게 세워갑시다. 특히 하나님이 세우신 종들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게 선포될 때, 말씀에 순종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성도들이 됩시다. 비록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순간 하나님의 뜻을 어기며, 마음에 근심케 할 때도 있지만,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은혜와 하나님과 화목케 된 평강의 기쁨을 헤아리고 항상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갑시다.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몸을 대속의 제물로 기꺼이 내어주신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우리도 주를 본받는 자들이 됩시다. 그렇게 살기 원하시는 분들은 다함께 찬송가 310장으로 주신 말씀에 응답찬송을 올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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